Economics of Blockchain (Davidson, De Filippi, Pott 2016)

2016년 3월 경 SSRN에 공개된 블록체인의 경제학이라는 논문을 읽었다.

여기서 저자들은 블록체인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함에 있어 정보 혹은 통화 측면에서 접근하기보다는 거버넌스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그들이 제시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중구난방으로) 요약해본다.

원장이라는 기술은 전통적으로 중앙집권적이었다. 누가 무엇을 가지는지를 적은 것이 원장이다. 이것은 분산원장이라는 블록체인 기술이 생기면서 바뀌었다. 정부, 기업같은 존재가 수행하던 역할을 대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블록체인은 완전계약으로 이루어진 체계이다. 블록체인상에 구현되는 계약은 그것이 실행될 것임이 사실상 100%에 가깝게 확실하다. 하지만 현실세상에서는 완전계약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계약 또한 존재한다. 이런 불완전계약의 경우에는 여전히 정부나 기업 등의 수직적 체계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나, 완전계약의 경우에는 정부나 기업의 위치를 블록체인이 대체할 수 있게 된다. 불완전계약의 경우에도, 불확실성이란 측면은 여러 조건부 계약을 블록체인에 올리는 것으로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블록체인은 정보를 공유하는 플랫폼이 되므로 역선택, 도덕적 해이 등이 더 적어질 것이며, 따라서 기존 경제체계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되었던 비싼 시그널링, 스크리닝 등의 메커니즘은 여기에서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또한 블록체인은 신뢰로 인해 발생하는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줄여준다. 이는 시장이 지배하는 영역을 늘리고 정부, 기업 등의 조직이 지배하는 영역을 줄이는 식으로 작동한다. 조직의 존재의의 중 하나는 기회주의적 행동을 통제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블록체인상의 정보는 누구나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므로 기존의 중앙집중적 모니터링을 위해 들어가는 비용 또한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블록체인은 기존의 조직보다 더 효율적인 체계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블록체인에 대한 경제학적인 접근은 어떻게 기존의 정부나 기업이 블록체인을 도입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어떻게 블록체인이 이들을 대체할 것인가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블록체인에 대한 연구의 기초 단위는 체인상의 거래(계약)가 되어야 할 것이며, 블록체인은 단순한 정보통신기술이 아닌 새로운 제도기술(institutional technology)으로 파악해야 한다. 즉 화폐경제나 정보경제가 아닌 공공선택론(public choice economics)이 새로운 암호경제학(cryptoeconomics)의 기반이 될 것이다.

블록체인은 시장과 닮았지만 시장이 아니며 일종의 자생적 조직에 가깝다. 이 자생적 질서는 하이에크의 catallaxy와 비슷하다. 이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확장된 질서'(extended order) 내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Hayek 1988) 그가 이러한 글을 썼을 때에는 블록체인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국가 정도가 catallaxy의 예시였지만, 블록체인이 생기게 되면서 이러한 catallaxy는 훨씬 더 작은 규모에서도 성립할 수 있게 되었다.

사용자들은 어떤 블록체인을 사용하는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이는 바꿔말하면 그들이 어떠한 블록체인 상에서 거래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행위가 상호간에 어떠한 헌법적 지배를 받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블록체인은 공유경제 3.0이다. (commons 3.0) 공유경제 1.0은 공유자원에 관한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조직이 있음을 밝혔다. 숲, 어족 등을 관리함에 있어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활발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 소규모 조직은 시장이나 정부조직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공유경제 1.0이 이러한 자연적 자원을 다루면서 사적인 조직 거버넌스가 효과적인 소규모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보였다면 공유경제 2.0은 정보 및 지식의 공유, 특히 디지털적 공유를 통해서 공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평판 시스템이 준공공재의 생산에서 무임승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를 보였다. 공유경제 3.0은 어떻게 공유경제의 이점을 살리면서 대규모 상호협력을 가능하게 만드는가에 대해 암호학적 컨센서스라는 기술적인 해결책을 제공한다. 블록체인은 ‘신뢰 없는 공유경제’이며 (trustless commons) 오스트롬이 발견한 8가지 공유경제 디자인 규칙과 (Ostrom 1990) 비슷한 형태를 띄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존의 경제체제 하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지대(rent)를 얻고 있던 세력, 예를 들어 정부 등은 이러한 블록체인에 맞서 싸우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정부보다도 은행이 좀 더 대표적인 예시라고 본다. 우리는 은행을 믿고 돈을 맡기고 또 기업들은 은행을 믿고 돈을 빌리며 은행은 이 신뢰를 가지고 예대마진을 얻으니까. 하지만 대리민주주의 방식을 취하는 우리나라 정부(특히 국회) 또한 사실 이런 적대적 세력에 속할 수 있다고 본다. 선거철만 되면 국민 표 얻는다고 읍소하며 다니지만 그 이후에는 노룩패스, 비서진에 대한 갑질, 성의 없는 입법, 성추문 등등 난리도 아니니… DPOS를 전격적으로 도입하면 언제든 위임을 철회 가능하니 이런짓을 하기 어렵겠지?)

블록체인상의 거래는 DAO를 통해 완전히 자동으로 실행될 수 있다. 그러나 블록체인에서의 계약이 현실에서도 집행될지는 불투명한데, 왜냐하면 이러한 계약 및 거래는 정부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것이며 따라서 법의 그림자조차도 닿지 못하는 영역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것이 약탈적인 정부 하에서는 오히려 효율성 증가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블록체인 참여자들 사이에 계약상 갈등이 발생하더라도 이들은 블록체인 내에서의 평판(reputation) 그리고 미래의 거래를 위해서 블록체인을 지속시킬 유인이 있기 때문에 갈등을 봉합하려 할 것이며, 스크리닝 혹은 시그널링 등의 메커니즘 또한 계약상의 의도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정보비대칭을 처리하기 위하여 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블록체인 거버넌스 혁명으로 인하여 도입된 이러한 경쟁체계는 과거 국가들이 멸망할 때 벌어졌던 구조 정리 효과, 즉 그동안 쌓여왔던 규제 및 부담이 사라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structural cleansing effect)

공공선택론은 더 좋은 사람이 아니라 더 좋은 제도가 민주주의를 만든다고 한다. 블록체인이 도입되더라도 콘도르셰 사이클( https://en.wikipedia.org/wiki/Condorcet_paradox ) 이나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같은 ( https://en.wikipedia.org/wiki/Arrow%27s_impossibility_theorem ) 것은 여전히 성립되겠지만 Down (1957), Brennan and Lomasky (1993), Caplan (2007) 등의 결과는 어느 정도 수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 다수의 횡포(Buchanan and Tullock 1962), 조직된 소수에 의한 착취(Olson 1965), 투표자의 합리적인 무지 등은 상당 부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들은 마지막으로 Backfeed라는 Proof-of-Value 알고리즘을 제안한다. 체인 참여자들은 경제적 토큰 및 평판 점수를 얻게 되며, 평판 점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평가한 것, 그리고 나의 다른 사람들에 대한 평가가 전체 블록체인 커뮤니티의 그것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여부에 따라 바뀌게 된다. 이를 통해 자생적으로 조직되는 분산된 형태의 실력주의 사회를(meritocracy) 만들게 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들은 블록체인을 단순히 새로운 기원이 되는 정보통신기술으로 보는 것은 블록체인의 일부만 보는 것이며 학자들은 블록체인을 시장, 정부, 기업 등과 경쟁할 새로운 제도적 기술으로 바라보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또한 그들은 이러한 통찰을 바탕으로 코즈, 하이에크, 오스트롬, 윌리암슨, 뷰캐넌 등의 연구를 참고하여 이러한 새로운 경제제도를 알아가야 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유명 경제학자가 블록체인은 죽었다 운동(?)에 동참했다 쪽팔린(?) 일을 당했었는데,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좀 더 읽어볼만한 글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제도주의, 공공선택과 연계해서 파악하는 것은 학자들의 특권인 것 같다고 본다. 논문에서는 매우 간단하게 ‘지대를 얻고 있던 세력의 저항이 있을 것이다’ 정도로 끝냈지만.. 생각해보면 이건 매우 큰 문제다. 다시 말해, 블록체인은 인류 역사가 시작되고 조직이 생겨난 이후 지금까지 우리가 신뢰를 주어 왔던 자들, 다시 말해 은행, 대통령, 국회의원, 재벌총수 등등의 권력자들이 싫어하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그리고 아마 그렇게 될 거라는?) 말이다.

지금 화폐적인 측면만 주로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불법이니 뭐니 하는 저항이 강한데 그들이 얻는 지대의 근본을 파헤치겠다고 한다면 어떠한 반응이 나올까? 아직 그런 논의가 현실화되기에는 너무 먼 것 아닐까?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는 주장이지만… 그게 얼마나 장기일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Advertisements

kornfrost에 대하여

B.A. in economics with investing as a hobby
이 글은 All posts, cryptocurrency 카테고리에 분류되었고 , , , , , , , , , , , , , , , 태그가 있습니다. 고유주소 북마크.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