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제화 이야기

옛날 옛적에 구두가게가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너무 잘 나가서 손님을 줄 세워놓고 번호표 뽑아서 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호시절은 지나갔다. 금강제화, 엘칸토, 에스콰이아 3대장 중 남은 것은 금강제화 뿐이며 그마저도 매출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토종 제화업체 ‘엇갈린 운명’···금강제화만 남았다”
http://www.newsway.co.kr/view.php?ud=2014073116384850649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망하는 길으로 접어들었을까? 물론 디자인이 낙후되었다거나 하는 요인들이 있다. 그러나 내가 디자이너가 아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그런 요인에 대해서 다루지 않을 것이다.  나는 투자자로서 볼 때, 피할 수 있었던 리스크라고 생각되며, 동시에 현재 구두업체가 겪는 어려움의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짚어볼 것이다. 바로 ‘상품권’이다.

금강제화는 직원들에게 자사 상품권을 강매하기로 유명하다.
“1000만원어치 팔아오라”…금강제화, 구두상품권 강매 논란(종합)”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7010313511346813
위 기사를 보면 직급에 관계 없이 전 직원이 상품권 영업사원임을 볼 수 있다.

상품권은 조금 특별한 재화다. 그것이 화폐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사의 구두 제품에 대해서 상품권은 현금과 같은 가치를 지닌다. 상품권에 적힌 액면가만큼 구두 가치를 지불할 수 있으며, 유통기한은 존재하지만 유통기한 안에만 가져가면 액면가를 그대로 쓸 수 있고, 구매하고 남은 거스름돈은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으며, ‘상품권깡’ 즉 일정 수수료를 지불하고 상품권으로 현금을 바꿔갈 수도 있다. 즉 탈세에 이용될 수도 있는 물건이다.

금강제화를 비롯한 구두 업체들은 구두상품권을 매우 많이 팔았다. 나중에 이걸로 구두를 사러 올거라는 생각이었겠지. 당시에는 업장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줄세워야 할 정도라고 했으니 아마 물량을 공급하기 어려워서 상품권으로라도 팔아놓을 생각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나중에 되돌아오게 된다.

화폐는 실물을 교환하는 매개가 된다는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것은, 실물경제에 맞는 수준에서 적정 화폐 유통량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두상품권은 실물경제, 즉 구두로 바꿔가려는 수요에 비해 더 많이 발행되었다. 상품권의 인플레이션이 일어난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 즉 상품권의 가치는 실물(구두)에 비해 떨어진다. 그런데 상품권에는 구두의 액면가가 적혀있다. 그래서 상품권의 가격이 낮아지는건 불가능하다. 바꿔말해 구두의 상품권 환산 가격(=원화가격)이 올라가거나 상품권의 원화환산 가격이 내려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만약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면 금강제화는 기존 가격에 꾸준히 구두를 공급해야만 했을 것인데, 원화 인플레율이 2%라고 가정한다면 매년 매출이 2% 줄어드는 셈이 된다. 영업이익이 매출의 10%정도라면 약 5년만에 이익이 0으로 수렴하는 것이다. 그래서 금강제화는 구두의 상품권가격도 올리고 상품권의 원화가격도 내렸다.

과도한 상품권 발행으로 인해 구두의 가격이 올라가면,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구두를 덜 사게 된다. 신발이 귀하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운동화 컨버스화 샌들 등등 수많은 구두 대체재가 있으며, 구두도 다양한 개성을 추구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가 되었다. 상품권으로 인한 가격상승 없이 이런 트렌드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터, 상품권으로 인해 발생한 가격상승 압박까지 더해진 것이다. 게다가 사실상 무제한적 상품권 발행으로 인해서 구두가 인상만으로는 당연히 안 되니 상품권까지 할인판매하게 되는데, 이는 고객들에게 ‘구두는 상품권으로 사야 한다’는 학습효과를 가져왔다.

결국 제화 3사는 사실상 파산에 이르게 되었다. EFC는 법정관리, 엘칸토는 잦은 주인 변경, 금강제화는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매년 전 직원이 모여 ‘상품권 발대식’이나 하고 있는 형편이다.

암호화폐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런 사례를 참고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암호화폐는 그 화폐로 거래할 수 있는 실물에 비해서 매우 많은 발행량(시가총액)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언젠가 제화업계에 들이닥친 것과 같은 형태의 일이 일어날 것이다. 실물의 암호화폐가격이 오르거나, 혹은 암호화폐의 원화/달러화 가격이 내리거나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은 암호화폐의 원화/달러화 가격이 내리는 형태로 반영될 것이다. 이 시장이 훨씬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암호화폐가 가지는 가능성 위주로 가격에 반영되고 있지만, 실제로 암호화폐를 사용해 실물을 거래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점이 올 때 즈음이 되면 아마도 기술적인 성숙으로 인해 각 국가에서도 자기만의 암호화폐 도입을 고려할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보는데, 이러면 현재 암호화폐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사설화폐는 국가가 만드는 화폐들에 지분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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